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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찾아 입양인들이 돌아온다] "행복한 새 가정의 기쁨 커질수록 뿌리찾기 갈망도 커져요"
yesdaddyen 1.226.2.179
2018-02-07 19:25:30
 
문도희씨 현재사진
문도희(37)씨는 친생부모를 찾기 위해 미국 하와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문씨는 1980년 1월28일(낮 12시27분) 홀트아동복지회 인근의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뒤 곧바로 홀트아동복지회로 인계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같은 해 10월9일 미국 하와이 주의 현재 부모님에게 입양됐지요.

문씨의 현재 삶을 살펴보면 아주 이상적인 입양 케이스라고 생각될 정도로 좋은 양부모, 가정을 만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가족이 힘을 합쳐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고, 아들을 넷이나 두고 있다고 합니다.
 
문도희씨 입양당시
문씨의 경우는 다른 입양과 상황이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부모님이 같은 인종이라는 점이 차이가 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고요? 정체성 혼란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문씨의 양부는 중국 출신, 양모는 타이완 출신입니다. 이 덕분인지 문씨는 영어 원어민이면서 중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합니다.

서구 국가로 보내지는 해외입양인의 경우 대부분 피부색, 눈동자 색, 머리카락 색 등 자신의 외모가 부모와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며 ‘왜?’라고 질문하며 어렸을 때부터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됩니다.
 
문도희씨 입양시절
어렸을 때부터 친남매 사이에도 벗은 몸을 보면서 ‘왜 나는 다를까?’라고 의문을 갖게 되면서 성의 차이를 느끼고 이해해 나가는 것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문제입니다. 어쨌든 문씨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겪을 필요가 없었다는 겁니다.

문씨의 남편 또한 필리핀 출신입니다. 해외입양인은 자신이 겪었던 정체성 혼란을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대에 걸쳐 외모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문씨의 경우 아이들도 그러한 혼란을 겪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어서인지 문씨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양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한국행도 가족들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라고 하네요. 다수의 입양가정에서는 여러 불화로 인해 입양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뿌리찾기에 나서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불화를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씨에게 “이번 한국행으로 인해 경제적으로나 어떤 차원이든 희생을 한 것은 없었는가”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런 것 전혀 없다”며 “한 달 가까이 육아에서 벗어나 너무 행복하다”고 함성을 지르더군요.
 
문도희 씨 어렸을때
문씨는 10살 전후의 아들 넷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가 넷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전부 다 아들이라니. 매 순간이 그야말로 ‘전쟁 통’이라네요. 그나마 부모님과 남편이 모두 합심해 육아를 하기 때문에 근근이 버티고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가끔은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따르기도 한다니 합심해서 함께 사랑으로 키운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한참 ‘육아해방’을 이야기하던 문씨가 갑자기 일어나 짐을 뒤적이기 시작합니다. 마트에 가서 아이들을 위해 과자며, 옷이며, 장난감 등 여러 가지를 샀는데 뭔가 빠뜨린 것 같다면서요. 말로는 “육아전쟁에서 피난왔다”고 하면서도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문씨는 위에서 얘기한 대로 부모님과 함께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유소를 운영한 수익으로 일부 다른 사업을 벌이기도 하는데, 그와 관련한 돈 관리이며 부모님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문씨가 도맡고 있습니다. 가업이나 가사, 육아 등을 모두 함께 분담하고 있는 겁니다.
 
문도희씨 어렸을 때 가족사진
이렇게 사랑스러운 가정에서 자랐지만 문씨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입양인지라 ‘뿌리에 대한 궁금증’과 관련해서는 답이 없는 겁니다. 잘 키워준 양부모가 너무도 고맙고, 그들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자신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한국에 대한 부분이 마음 한켠을 차지했고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문씨가 이 문제와 관련해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를 꼽자면 아이들의 출생신고 때입니다. 미국에서는 출생신고를 할 때에 부모의 출신을 밝혀야 한다고 하네요. 제대로 쓴다면 출신에 ‘한국’이라고 적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준 양부모가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심했답니다. 결국 서류에는 어머니의 출신국가를 적었지만 그 선택은 두고두고 자신만의 ‘찜찜한 응어리’로 남았습니다.
 
문도희씨 가족사진
문씨의 이번 한국행은 위에서 살펴봤듯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는 ‘꼭 한국을 와야 해?’라는 의문을 갖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맞습니다. 메일도 있고 팩스, 전화 등 여러 방편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올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이 일반적인 생각일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문씨 또한 입양기관 등에 메일로 질의를 하고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돌아온 건 매우 단편적인 서류와 몇 가지 추측성 정보에 불과했습니다. 여러 차례 추가로 요청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친모의 성격이 밝고 활달했다’ 혹은 ‘친모가 출산 직후 곧바로 친권포기각서를 썼다’ 등의 귀띔에 눈이 동그래지기도 했지만 뿌리찾기에는 별다른 힘은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선택은 결국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직접 가서 부딪혀보리라’로 모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대면하고, 발품을 팔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갓난아이 시절 한국을 떠난 뒤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지만 문씨의 소득은 이렇다 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법으로 보호받는 친생모와 양부모의 권리에 비해 너무도 홀대받는 입양인의 권리의 현주소를 절감한 채 다시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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