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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부산에서 딸 낳은 '58년생 이정희씨' 찾습니다
예스대디 27.100.224.41
2017-04-20 09:23:28
 1984년 입양보내지기전 아기 이숙희
 1984년 입양보내지기전 아기 이숙희
ⓒ 이숙희

 


기록에 따르면 이정희씨는 지난 1984년 1월 30일 오후 7시 부산 진구에 있는 김종애 조산소에 도착 밤 9시 딸 이숙희씨를 낳았다. 출산 후 2시간 후인 밤 11시쯤 이정희씨는 갓 태어난 딸을 남겨두고 조산소를 떠났고 그때 이씨는 26세(1958년 생 추정)였다.

이씨는 당시 싱글맘으로서 혼자 딸을 키울 수가 없기 때문에 좋은 가정에 딸이 입양될 수 있게 해달라고 조산소에 간곡히 부탁했다. 그래서 조산소 관계자는 그 다음날 동방사회복지회 부산지부에 연락을 하여 이숙희씨를 인계했다.

그 후 이숙희씨는 부산의 한 위탁가정에서 1984년 2월 10일까지 지냈으며 그 후에는 서울 천사영아원으로 보내졌다. 이씨는 지난 1984년 6월 12일 미국 펜실베니아주로 입양 보내졌다.

미국의 백인가정에 입양 보내지고 그는 어린 시절 얼굴도 모르는 친모 이정희씨에 대해 심한 분노를 느끼고 심지어 원망까지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1980년대 한국 상황을 점차 이해하게 된 지금, 그는 이제 더 이상 친모에 대해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이숙희씨는 자신이 지금 미국에서 잘 살고 있고 그래서 자신을 낳아준 친모와 자신의 뿌리에 대해 그저 알고 싶을 뿐이다.

다음은 친모 이정희씨를 찾고 있는 미국입양인 이숙희씨와 지난 1주일간 국제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984년 6월에 미국으로 입양된 이숙희씨
 1984년 6월에 미국으로 입양된 이숙희씨
ⓒ 이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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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6월에 미국으로 입양된 이숙희씨
 1984년 6월에 미국으로 입양된 이숙희씨
ⓒ 이숙희

 


- 지난 2009년부터 8년간 친모 이정희씨를 찾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그리고 그동안 성과는 있었나?
"지난 2009년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내 뿌리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래서 먼저 미국에 있는 입양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미국입양기관으로부터 내 친모의 이름, 나이 등 내가 미국으로 입양 보내지게 된 사연이 담긴 기록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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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그 후 한국에 있는 해외입양인연대(G.O.A.L.)에 도움을 요청하여 지난 2010년 해외입양 보내진 후 처음으로 친모를 찾기 위해 모국인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 한국에 와서 지난 1984년 내가 미국으로 입양 보내지기 전 잠시 나를 돌봐주신 부산의 한 위탁가정의 위탁모와 감동어린 재회를 했다. 하지만 위탁모는 내 친모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내가 태어났던 부산진구 일대와 파출소 등을 수소문 했지만 내 입양기록이나 친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때 난 한국에만 오면 친모를 금방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럴 수 없어서 너무나 절망했다. 7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친모를 찾을 수 있다면 정말 원이 없겠다.

그 후 나는 실의에 젖은 상태에서 미국으로 돌아왔고 미국에 살면서 한국의 몇몇 언론사와 스카이프로 인터뷰를 하면서 친모를 수소문 했다. 그 후 한국에서 몇몇 분이 내 한국가족이라고 연락을 해 와서 벅차오르는 흥분을 가슴에 안고 DNA를 검사했지만 다 맞지 않았다. 그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를 미국으로 입양 보낸 한국 동방사회복지회에 친모를 찾아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동방사회복지회는 한국에는 1958년생으로 이정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너무 많아 주민등록번호를 모르면 친모를 찾기가 불가능하다고 내게 통보했다. 이때 나는 너무 답답했다. 

해외입양인연대 회원들은 서울과 부산의 길거리에서 내 어린 시절 얼굴사진과 입양당시 정보가 담긴 소책자를 만들어 행인들에게 나눠주며 내 친모를 찾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해주셨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오마이뉴스에서 내 사연을 한국사회에 알려 주시기를 요청드린다. 지금 다시 한국에 가서 내 사연이 담긴 소책자를 서울과 부산의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직접 배포하며 친모를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두 아기들을 돌보아야 하는 엄마다. 또 한국에 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지난 8년 전부터 지금까지 난 시간이 날 때마다 친모를 찾기 백방으로 문의하고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극심한 절망감과 슬픔에 젖어 잠도 못 이뤘다. 이러다 친모를 영원히 못 찾지 않을까 걱정과 우려도 많이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친모 찾기를 포기하지 못하겠다. 제발 오마이뉴스에서 내 친모 찾기를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요청 드린다." 

"해외입양인의 근원적 고통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
 
 지난 2010년 한국을 방문한 이숙희씨
 지난 2010년 한국을 방문한 이숙희씨
ⓒ 이숙희

 


- 미국에서 해외입양인으로 살면서 겪은 가장 힘든 경험은 무엇인지?
"내가 태어난 곳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주 멀리 보내져서 사는 것, 그리고 내 친부모와 형제들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또 그분들이 잘 계시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것, 이런 근원적 고통과 아픔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 10대 시절에 아무래도 정체성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나의 10대는 괜찮은 편이었다. 나는 양부모님의 따스한 사랑을 받았고 친구도 있었고, 양부모님은 경제적으로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내가 자란 곳은 백인 중산층들만이 있는 지역이어서 내 다른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 백인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많이 당했다."

- 8년 전에 한국 친부모를 찾아야겠다고 나선 계기가 있었나?
"나는 한국 가족의 외모가 나와 비슷한지 너무 궁금하기도 했다. 또 혹시 한국 가족 중에 유전적인 질병은 없는지도 알고 싶었다. 나는 지금 결혼하여 아이들이 있는데 내 아이들에게도 어떤 유전적인 질병이 있는지 있다면 미리 알려주고 싶다. 또 내 입양기록의 진위여부도 친엄마를 통해 직접 확인하고 싶다. 친엄마를 만날 수 있다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궁금증이 일시에 사라질 것이다."

- 한국 친모나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저는 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고 몸도 건강합니다. 다만 친모를 모르는 상실감으로 인해 항상 마음에 말 못할 공허함을 느낍니다. 이 공허함은 아마 친모를 찾기 전까지는 채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친모와 한국의 가족들도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친모에 대한 분노는 없지만 정말 나를 이 세상에 낳아주신 엄마를 만나고 싶습니다. 절대 나를 두려워하거나 나에 대해 걱정하지 마시고 엄마가 내게 연락을 주시면 원이 없겠습니다. 나는 죽는 날까지 엄마를 계속해서 찾을 것입니다. 지난 33년 간 엄마를 만나 본 적이 없지만 나는 정말 엄마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최근의 이숙희씨 모습

 

 

 최근의 이숙희씨 모습
ⓒ 이숙희

 


- 한국정부와 입양기관에 남기고 싶은 말은?
"내가 아기였을 때 나에게 음식을 주고 건강하게 살려주셔서 감사하다. 한국 내 싱글맘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혼자 힘들게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들에게 한국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해 주기를 바란다. 미국과 유럽에서 혼자 아이들을 꿋꿋하게 키우는 싱글맘들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받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마치 영웅처럼 존중받고 있다. 싱글맘들은 집과 직장 두 곳에서 정말 열심히 일한다.

정부와 사회도 싱글맘들에게 따듯한 시선과 물질적 지원을 베풀어 준다. 싱글맘들이 자기가 낳은 사랑하는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도록 궁지에 모는 사회는 정말 비인간적이다. 싱글맘이 입양 상담을 원할 때 정부와 입양기관은 입양보다는 싱글맘이 아이를 직접 키우는 일이 가장 소중하다고 알려주고 적극적인 정신적, 물적 후원을 해 주어야 한다.

한국에서 시설이나 입양부모가 한부모보다 정부지원금을 더 많이 받는 현재의 모습은 정말 기형적이다. 싱글맘이 얼마나 생활고와 사회적 편견 그리고 차별에 시달렸으면 사랑하는 아기의 양육을 포기할까?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에 싱글맘과 아기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도록 최대한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한국인들과 한국사회에 대해 미국 입양인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나는 내 몸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나는 한국인들이 제발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끝까지 책임져 주는 사람들이기를 바란다. 부모가 누구이건 아이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싱글맘들에게 더욱 따듯한 시선을 보내주는 한국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을 살다 보면 싱글맘들 경우처럼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이때 싱글맘들에게 돌을 던지기보다는 따스하게 포용해주고 지원해 주는 한국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이숙희씨는 지금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두 아이의 엄마이자 간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숙희씨를 알아보시는 분은 '뿌리의집'(전화 02-3210-2451)으로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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